
” 한 3년이면 모든 게 다 끝날 줄 알았어요. 근데 이게 10년이나 됐고, 아직도 한참 남았네요. 하지만 반대로 (이룰 게 아직 많아서) 설레기도 합니다.”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가 대학생 시절 창업한 모두싸인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법대를 다니던 대학생이 시작한 모두싸인은 현재 누적 서명자 1000만 명을 넘어서며 국내 전자계약 시장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았다.
처음엔 전자계약이 아니었다
이 대표의 첫 창업 아이템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다. 시작은 ‘로톡’과 유사한 변호사-의뢰인 매칭 플랫폼이었다. 이 대표는 법대생인 자신에게 주변에서 법률 상담과 변호사 소개를 요청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관련 수요가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플랫폼은 오래 가지 못했다. 변호사와 연결이 되어도 소송을 꺼려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상담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소송이 진행된다고 해도 대부분 소액 소송이었기 때문에 플랫폼이 거둘 수 있는 수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민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고, 소송을 하더라도 70%는 변호사를 안 씁니다. 금액이 3000만 원 미만인 소액 사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민사 분쟁의 상당수가 계약서 문제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계약서를 안 썼거나, 분실했거나, 잘못 작성했거나, 오해가 생긴 경우들이었다.
그래서 사업 아이템을 ‘계약서’로 틀었다. 계약에 관련된 문제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계약서를 쉽게 쓸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간단한 질문과 답으로 계약서를 자동 생성하는 도구와 이 계약서에 온라인으로 서명을 하면 당사자에게 교부되는 서명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이 아이디어는 좋은 평가를 받아서 투자도 받고 이용자도 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용자들의 행동을 보니 자동으로 생성된 계약서를 별도로 편집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계약서 생성이 아니라 만나지 않고 온라인 상으로 계약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자서명에 집중한 모두싸인이 등장한 배경이다.

한국 전자계약 시장의 표준,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모두싸인은 현재 한국 전자계약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총 가입자는 200만명에 달하고, 누적 서명자는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국내 경제활동 인구의 20%에 달하는 수치다. 회사 측은 국내 전자계약 시장 점유율의 70% 이상을 모두싸인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자계약의 침투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전체 서명이 필요한 문서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전자계약화된 것은 0.1%도 안 된다고 이 대표는 추정한다. 계약서뿐만 아니라 동의서, 신청서, 확인서 등 서명이 필요한 모든 문서를 포함한 수치다.
이미 디지털화된 시대에 전자계약 도입은 왜 이렇게 더딜까? 이 대표는 세 가지 불안감을 꼽았다.
첫째, 수천 년간 실물 계약을 해왔던 행태를 바꾸는 것에 대한 이질감이다. 둘째, 법적 효력에 대한 불안감이다. 셋째, 중요한 계약서가 외부 클라우드에 저장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특히 한국의 도장 문화가 큰 걸림돌이다. 이 대표는 “전 세계에 인감증명서 같은 제도가 있는 나라가 한국, 일본, 대만 딱 3개뿐”이라며 “여전히 사람들은 계약에 대해 ‘도장 찍고 인감증명을 첨부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같은 도장 문화권인 일본은 상황이 다르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일본은 코로나 이후 국제적으로 놀림을 받자 과감하게 변화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틀릴 수도 있겠지만 한 일본 기업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기업 수 기준으로 50%가 전자계약을 쓴다고 합니다. 일본의 1위 전자계약 서비스인 클라우드사인은 계속 고성장하고 있고, 관공서도 대부분 전자계약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인감증명서 기반의 제도와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다. 이 대표는 “한국은 어떤 부분은 되게 빠른데 어떤 부분은 정말 느리다”며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시장을 예로 들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시가총액 1조 이상의 유니콘 중 10개 중 8개가 클라우드 기반 SaaS 회사입니다. 근데 한국은 SaaS 기반으로 상장한 회사가 하나도 없어요.”
글로벌 CRM 1위인 세일즈포스의 일본 매출은 2조원이 넘지만, 한국은 1000억원도 안 된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여전히 SaaS 서비스에 보수적이라는 방증이다.
바이라인네트워크 2026.01.26 기사 원문 바로가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