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계약을 한다. 기업 간 거래는 물론 일하는 대가로 연봉을 얼마나 받을지 정하는 근로계약서, 집을 구할 때 임대차 혹은 매매 계약서, 휴대폰을 개통할 때도 거는 약정계약 등 계약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다만 현재 체결되는 계약은 대부분이 아날로그 방식이다. 우리나라 전자계약 시장은 아직까지 개화 단계라는 평을 받는다. 임대차 계약만 해도 집을 빌려주는 이와 집을 빌리는 이가 서로 만나서 계약서에 도장을 여러 번 찍는다. 인감증명서를 등기소에서 발급받아 첨부해야 할 때도 있다.
유독 계약은 디지털화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 IT조선은 우리나라 전자 계약 서비스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로 꼽히는 모두싸인의 이영준 대표를 만나 계약의 디지털 전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보다 느린 한국의 디지털 전환
대한민국의 계약 분야는 디지털 전환(DX)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시장이다.
인감증명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감증명서는 내 인감도장이 내 것이 맞다는 본인 확인을 위한 서류를 말한다. 인감증명서는 한국, 일본, 대만 등 전 세계에 세 나라에만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디지털 신분증이나 패스(PASS) 앱 등 각종 본인인증 서비스가 상용화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인감증명서가 필요한 곳이 많다. 큰 돈이 오가는 거래일수록 불안하니 전자계약 같은 익숙하지 않은 방식 대신 익숙한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관련 업계가 한국이 일본보다 계약의 디지털 전환이 늦다고 보는 이유다. 보통 한국 사람은 코로나19 대유행기 일본이 수기로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확인하고 종이에 도장을 받으러 다니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편견이다.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는 “일본은 오랜 경기 불황을 겪으며 한국보다 비즈니스를 효율화해야만 하는 상황에 먼저 놓였다”며 “그래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하기 위해 우리나라보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더 꼼꼼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일본 정부 주도로 전자계약을 장려하면서 관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이 없이 만나지 않고 간편한 계약관리
계약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전자계약을 도입할 이유는 간편해서다. 전자계약은 계약서를 인쇄해 계약 당사자가 서로 만나지 않고도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체결된 계약서를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할 수도 있고 계약 만료 전 갱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알림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만나서 서명한 종이계약은 계약을 한 당사자가 하나하나 모든 과정을 직접 해야 한다. 임대차 계약이라면 계약 만료일을 확인하고 만료 전 갱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상대방을 만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등기·퀵을 이용하기도 한다. 만나는 것과 비슷한 자원이 필요하다.
이영준 대표는 “모두싸인은 본인인증을 한 다음 별도의 설치나 가입 없이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계약서 링크를 공유하면 상대방이 바로 서명할 수 있게 했다”며 “그동안 전자계약을 시도한 곳은 많았지만 공인인증서를 사용해야만 하는 등 서비스 하기에 편한 길을 찾다 보니 이용자 경험(UX)이 불편해져 시장이 더 커지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이 대표가 모두싸인을 창업한 배경이다. 이 대표는 부산대학교 법학과 재학 시절 직접 개발동아리 ‘앱티브(Apptive)’를 만들어 운영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IT에 관심이 많아 앱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앱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 개발, 디자인 등 다양한 직군이 필요했다. 동아리를 창설해 변호사를 찾아주는 형태의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했다.
모두싸인은 그 앱티브에서 같이 활동했던 동기·후배와 이영준 대표가 함께 만든 회사다. 리걸테크 형태의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계약서를 체계적으로 작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서다. 이 대표와 공동 창업자들은 2015년 12월 법인을 설립하고 모두싸인 베타 서비스를 2016년 2월에 내놨다.
이 대표는 “소액사건이 변호사에겐 계약서 같은 증거가 부족해 소송 난이도는 높은데 수임 확률과 단가 낮고 의뢰인은 소액사건인데 수임료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이런 사항이 많으면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이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도록 계약서를 간편하게 쓰고 잘 보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계약을 더 간편하고 안전하게
현재 모두싸인은 계약서 작성·체결·보관 등 계약의 생애주기 전반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계약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계약주기관리(CLM, Contract Lifecycle Management)다. 단순 전자서명에서 더 나아가 계약서 공동 작성부터 계약 체결 후 계약 이행 여부 점검, 계약 만료·갱신일 관리 등 전체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이영준 대표는 모든 계약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이미 종이로 작성된 기존 계약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서비스도 구현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인공지능( AI) 기술이 접목된다. 명함관리앱 ‘리멤버’에 명함 사진을 올리면 자동으로 명함을 등록해 전화번호부에 저장해주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계약서 이미지를 올리면 이를 AI가 분석해 저장하고 사람이 마지막으로 맞는지 확인만 하면 된다. 이렇게 저장된 계약서 데이터는 AI 챗봇 등이 관리한다. 이번 달에 만료 또는 갱신해야 하는 계약을 알려달라고 입력하면 AI 챗봇이 찾아주는 방식이다.
이영준 대표는 “이런 B2B SaaS 시장은 결국 일을 데이터 기반으로 하는지와 연결된다”며 “많은 회사가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한국은 아직 아날로그 기반으로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고 디지털화도 잘 되어있지 않아 데이터를 어떻게 쌓고 거기서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지 그 경험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두싸인은 계약을 더 간편하고 안전할 수 있도록 모두싸인이 계약의 표준이 되려고 한다”며 “다양한 기업이 각각 자신의 비즈니스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초석을 깔아드리는 것이 계약주기관리 서비스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IT조선 / 2024.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