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 모두싸인 대표 | 최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이제 SaaS의 시대는 끝났다”는 도발적인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생성형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필요한 기능을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시대에 매달 구독료를 내며 남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쓸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CRM이나 업무 지원 도구 사용을 줄이고 AI를 활용해 사내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다. 자본 시장에서도 대표적인 SaaS 기업들의 주가 흐름을 근거로 ‘SaaS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겉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듯한 주장처럼 보인다.
이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CEO의 발언이다. 그는 2024년 말 한 팟캐스트에서 “SaaS는 죽었다”고 말해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SaaS를 가장 많이 판매해 온 기업의 수장이 던진 이 발언은 상징성이 컸다. 여기에 AI 에이전트가 빠르게 확산되며 사람이 소프트웨어를 직접 다루지 않는 업무 환경이 현실이 되자 이 말은 SaaS 종말 선언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SaaS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런 해석은 SaaS 비즈니스의 본질을 절반만 이해한 결과에 가깝다. SaaS를 그저 ‘기능을 빌려 쓰는 소프트웨어’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기업이 SaaS를 도입하는 이유는 개발비를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복잡하고 전문적인 영역의 운영과 책임을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전문 조직에 위임하기 위해서다.
전자서명 서비스를 예로 들어보자. 겉보기에는 문서에 서명을 하는 단순한 기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자서명 및 전자문서 관련 법규 준수, 위변조 방지, 감사 추적, 외부 시스템 연동, 법적 분쟁 시 증거력 확보, 개인정보보호법 대응까지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다. 회계 소프트웨어는 매년 바뀌는 세법을 반영해야 하고 인사 시스템은 근로기준법과 판례 변화를 지속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이런 영역은 한 번 개발해두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기능 자체를 구현하는 일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법이 바뀌면 시스템도 함께 바뀌어야 하고 보안 기준이 강화되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 장애가 발생하면 즉시 대응해야 하고 사고가 나면 책임도 져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직접 구축을 시도했다가 다시 SaaS로 돌아오는 기업들을 수없이 봐왔다. 개발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기능을 운영하고 책임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부담이 개발비를 훨씬 웃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여기에 SaaS의 진짜 가치가 있다. SaaS의 본질은 기능 제공에 그치지 않고 그 기능이 지속적으로 신뢰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운영과 책임을 함께 떠맡는 구조에 있다. 다시 말해 SaaS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이면서 동시에 기업이 감당해야 할 복잡성과 리스크를 대신 관리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나델라 CEO의 “SaaS는 죽었다”는 발언도 다르게 읽힌다. 이는 SaaS의 소멸을 뜻한다기보다 사람이 화면을 통해 직접 조작하던 방식의 소프트웨어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에 가깝다. 실제로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소프트웨어 활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사람이 여러 시스템에 로그인해 작업하던 역할을 AI가 대신 수행하면서 SaaS는 도구에서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
매일일보 2026.02.11 기고 원문 바로가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