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대 시절 앱 관련 동아리 조직
– IT 독학해 법률 앱 ‘인투로’ 제작
– 앱 운영 중 종이계약 불편함 주목
– 편리한 계약 서비스 개발 박차
– 문서 업로드·서명·체결 전 과정
–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진행
– 중기 검증받고 대기업서도 인정
– 카카오 등 계약사만 9만 곳 육박
– “운전자 멀미 안 한단 문구 공감
– 원하는 길 택하면 성과 따라와”
상대방을 만나 종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하는 것이 계약 체결의 일반적인 과정이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퀵서비스나 등기로 종이 계약서를 보내야만 한다. 수천 년 지속한 ‘실물계약’ 문화가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시대를 맞아 퇴출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신 전자계약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는 분위기다. 공인인증서 폐지는 전자계약 시장에 날개를 달았다. 현재 국내 전자계약 서비스의 선두주자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스타트업 ‘모두싸인’이다. 부산대 법학과 출신 이영준(36) 대표는 모두싸인 창업 6년 만에 고객사 8만 곳과 이용자 50만 명을 확보할 정도로 빠르게 성과를 냈다. 카카오나 포스코 같은 대기업도 고객사다. “운전자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신념 아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이 대표를 최근 만났다.
■법대를 뛰쳐나오다
이 대표는 법학과 재학 중이던 2010년 서울에서 행정고시 공부를 했다. 고위 공직자의 길을 걷기 바라는 부모님의 바람에 따른 것이었다. 고시생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 스스로 ‘고시에 합격하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시대에 삶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앱을 개발하자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새로운 솔루션을 창조하는 것이죠.”
이 대표는 IT 분야를 독학했다. 앱티브라는 부산대 앱 개발 동아리도 만들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아이템은 주변에서 찾았다. “법을 전공해서인지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달라’는 지인의 요청을 자주 받았어요. 일반인이 쉽게 맞춤형 변호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앱 개발에 뛰어든 계기가 됐습니다.” 이 대표는 개발자·디자이너를 포함해 3명이서 도전에 나섰다. 자고 먹는 시간도 아까워 부산대 앞 원룸에 사무실을 차리고 개발에 매진했다. 2015년에는 로아팩토리를 설립했다. 의뢰인과 변호인을 연결해주는 법률 서비스 앱 ‘인투로’도 이때 탄생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약점은 불분명한 수익 구조. 변호사법에 따라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수임료나 수수료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일반인이 자신에게 맞는 변호사를 찾지 못해 브로커를 통하는 경우가 암암리에 있었어요.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했다는 데 만족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푼다는 생각으로 접근 했기 때문에 더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아요. 돈벌이 수단으로만 본다면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점을 극대화하라
이 대표는 인투로를 운영하면서 발견한 또 다른 문제에 주목했다. 대부분의 소액분쟁이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거나 종이 계약서를 분실해서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곧바로 계약서를 쉽게 만들어 스마트폰으로도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에 들어갔다. 앱 개발 대회에서 가능성을 확인하자 초기 투자 유치도 성사됐다. 이 대표는 인투로를 접고 새로운 앱의 고도화에 집중했다. 그렇게 2016년 모두싸인이 탄생했다.
모두싸인은 문서 업로드, 서명, 체결 등 계약 전과정을 전자화한 서비스다. 클라우드 기반형이어서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카카오톡 등을 이용해 쓸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 출시 1년 만에 12만 명의 이용자와 8000개의 고객사를 확보할 정도로 시장의 사랑을 받았다. 2018년에는 브랜드 정체성 확립을 위해 사명을 로아팩토리에서 모두싸인으로 변경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대면 계약 수요가 늘어 이용자와 고객사가 각각 50만 명과 8만7000개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 2월에는 투자금 115억 원도 유치했다.
이 대표는 모두싸인의 성공 비결에 대해 “전자계약의 핵심은 안전성과 편리함인데 앞서 출시된 전자계약 서비스는 사용하기 복잡했다. 모두싸인은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간편함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자계약을 불안해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개인이나 새 시스템 도입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을 타깃층으로 선정해 마케팅을 집중했다. 바닥부터 충분히 검증을 받으면서 고객층을 확장하는 전략이었다. 덕분에 현재는 카카오·포스코·한국 존슨앤드존스와 같은 대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운전자는 멀미하지 않는다
승승장구하는 모두싸인이지만 성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비수도권에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얕잡아 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와 만날 때 비즈니스보다 ‘광안리 가봤다’거나 ‘나이가 몇이냐’처럼 신변잡기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함에 서울지사의 주소를 표시한다든지 여러 시도를 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부산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에 가점을 주는 고객사도 있습니다. 현재의 고민은 성장통입니다. 처음 3명에서 시작한 기업이 100명을 눈앞에 둘 정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뼈아픈 실패도 겪을 수밖에요. 그래도 늘 조직원과 저의 역량을 어떻게 하면 빠르게 키울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국제신문 / 2021.04.18